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문단 편집) == 개요 == [[독일]]의 현대 [[철학자]]. 철학적 해석학의 대가로서, 지금의 해석학 체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가다머는 과학주의, 객관주의의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경험의 세계를 찾아서, 거기서도 진리와 인식이 획득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 진리의 획득은 '경험'을 '이해'하는 해석학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과학의 객관주의적 방법론의 보편적 요구는 이러한 진리,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차단시켜왔다. 따라서 가다머는 과학적 '방법'으로 밝혀낼 수 없는 '진리'가, 생활세계의 '경험'에서 '이해'의 역사성을 통해 얻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이런 이해들이 수많이 쌓여온 결과가 지금의 '선입견'과 '권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선입견을 통해서만 우리의 철학적, 예술적, 역사적 '이해'를 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예술적, 문학적, 역사적 판단도 개인의 한계있는 '해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과학[* 가다머가 말하는 '정신과학'은 철학, 예술, 문학 등등의 '''인문학'''을 말한다. 여기서 정신 '과학'이라고 한 것에 이상함을 느낄 수 있는데, 독일어로 과학과 학문은 Wissenschaft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 따라서 '정신학'이라고 말해도 되지만 한국에서 번역할 때 독문과 출신들이 '정신과학'이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에 굳어진 것이다. 다만 '정신과학'을 두고, '정신계열 과학(뇌과학)을 말하는 것인가?' 하고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정신과학은 '인문학'을 말하는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에서는 사실상 고정되고 완벽한 진리란 없으며, 우리의 판단은 선입견과 권위에 의지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 또한 '새로운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는 것을 알고, 항상 새로운 경험에 대해 온전한 개방성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 "경험의 완수라는 것은 앎의 완수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위한 온전한 개방성을 말한다. 절대지의 개념에 맞서 해석학적 성찰이 추구하는 진리는 바로 그런 것이다." (《Gadamer》 p.311 ; 하버마스에 대한 답변 중에서..)][* 물론 가다머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이해를 말하긴 했지만, 그의 책 대부분에서는 선입견에 대한 근거를 대고 있고, 이를 통해 선입견과 권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1960)》이 출간되면서, 해석학은 1960년대 이후 독일 사상계의 중심적인 논제로 등극했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철학, 문학, 문예비평, 예술, 역사학, 신학, 법학, 사회학, 정치학, 교육학 등에서 수많은 토론들을 만들어냈고, [[위르겐 하버마스]], 아펠, 베티, [[폴 리쾨르]], [[자크 데리다]] 등과의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